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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월 예수동행 목요집회 | 유기성목사 |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 계2:1-5

by 빛과 소금이 2024. 6. 25.

https://www.youtube.com/watch?v=5uNccx1qdfU

이 영상의 내용은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라는 주제로 유기성 목사님의 설교가 진행됩니다. 이외에도, 유기성 목사님의 예수동행 목요집회에서의 경험 이야기와 성경 구절 해석을 통해 용서와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다루고 계신 것으로 보입니다. 설교에서는 도전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에서 용서와 사랑의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것이 복음 전파와 행복한 삶의 열쇠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성경구절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감동적인 통역 경험과 성도들에 대한 용서와 사랑의 중요성

 

꽤 오래전입니다만, 제가 타지키스탄이라는 나라에 가서 그 말씀을 그 현지인들에게 전했던 적이 있습니다. 폭탄 테러가 일어나서, 수많은 사상자가 났던 그런 아주 위험스러운 그런 상황에 있는 그 지역 교회 교인들에게 꼭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이 필요하다고 간곡한 부탁이 왔어서, 타지키스탄 두산배라는 곳에 말씀을 전했어요. 또 누가 옆에서 이란 사람들에게 통역하고 뭐 그런 몇 단계를 거치는 통역을 거쳐서 말씀을 전했는데, 처음에는 아이 통역을 통해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 제대로 될까 한국말로도 설교가 잘 안 되는데 이 통역이 제대로 해 줄까, 이제 솔직히 좀 걱정이 되더라고요.

근데 통역이, 아 말씀을 전하면서 어, 제가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아, 제가 전하는 말씀을 얼마나 잘 현지로 통역하는 이제는 잘 모르지만 느낌이 있잖아요. 아, 통역이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울더라고, 통역을 하면서,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깨닫고, 그 말씀을 전하는 것이 본인에게 너무 자기 마음에 감동이 되고, 그래서 제가 설교를 그렇게 성도들이 은혜를 많이 받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저 때문에 은혜 받는 게 아니고, 순전히 통역 때에 은혜를 받는 거더라고 데, 그때 제가 마음에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제가 전하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서 그 느낌과 감정까지 담아서 전해주는 통역이 너무 귀하더라고 근데 그때 그런 마음이 순간 들더라고요 제가 그동안에 늘 설교하는 것이 사실이 통역이 하 역할을 하는 거였는데,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 나는 얼마나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말씀을 이 통력처럼 그 현지인 그 청년처럼 그렇게 전심으로 그리고 뜨거운 마음으로 내가 말씀을 전했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너무 감사하기도 하고 또 너무 하나님 앞에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용서하라 사랑하라 하는 메시지를 제가 전하면서 그때 생각이 나요 꼭 그 심정입니다. 그동안에 용서와 사랑에 대한 설교를 꽤 많이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를 오늘 또 하는 그 마음의 심정이 전적으로 주님의 마음 때문입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설교가 참 은혜로운 설교이지만 사실은 많은 사람을이 분노하게 하는 설교이기도 합니다. 제가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설교를 하고 아주 분노의 찬 메일을 받거나 또는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을 꽤 많이 겪습니다. 아, 다시는 이런 설교하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이 들 정도로 오늘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중에도 솔직히 오늘 설교가 마음이 불편한 분 도 있을 거예요. 가족들 사이에 혹시 부부 싸움하고 왔거나 어 가족 사이에 관계가 안 좋거나 교인들 사이에 미운 사람이 있거나 또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싫은 사람이 있는 사람 그런 분들은 오늘 말씀을 드릴 때 엄청 부담도 되고 솔직히 너무 싫은 마음도 드실 거예요.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 예수님의 마음과 사도 바울의 경고

 

 

용서와 사랑의 메시지는 사실 우리 본성에 잘 안 맞습니다. 심지어는 뭐 굉장히 화를 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는 그렇기 때문에 더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설교를 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마음이니까 순전히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마음이니까가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것이 우리의 사모함인데, 예수님 하고 마음이 맞아야 예수님과 동행하는 거잖아요

그죠.. 아무리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다고 믿어도, 예수님의 마음을 내가 품지 않는 다음에야 그걸 어떻게 예수님과 동행한다고 할 수 있겠어요. 박보영 목사님 유명하신 목사님이 그 박보영 목사님의 할아버지 되시는 고 박용익 목사님께서 돌아가실 때, 그 박보영 목사님 손주가 이제 의사였다가 이제 목사가 된 것을 늘 기쁘게 생각하셨던 그분이 유언을 하신 내용을 전해 주었어요.

그 내용이 뭐냐면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사랑하거라'. 그 손주 목사에게 해 주고 싶은 그 할아버지 목사님의 간절한 유원이 그대로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사랑하라. 이건 목사에게만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CS 루이스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용서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라.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용서하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 사랑하는 것이 우리 주님의 마음이에요. 그게 지금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밀레도라는 곳에서 에베소 교회 장로들을 부릅니다. 에베소 까지 가고 싶었는데 도무지 갈 수가 없는 상황이라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로 불러요. 왜냐면 이제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다시는 에베소로 갈 수도 없을 수도 있겠다 작별 인사를 거기서 한 거예요.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다가 사도 바울이 앞으로 에베소 교인들이 겪게 될 어려운 상황을 이제 말해줍니다. 이 에베소는 도시는 그때 당시 굉장히 타락한 도시였어요. 어느 도시나 사실 타락한 거죠. 우상 숭배가 심하고 그리고 아주 풍요를 추구하고 죄악과 거짓 이단들이 난무하는 영적으로 말할 수 없이 악하고 타락한 도시였고 거기에 아주 소수의 에베소 교회가 있었어요.

이제 사도 바울이 서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 걱정이 앞서는 겁니다. 이제 무서운 악한 영들이 너희들을 무너뜨리려고 역사할 거라 대비하라는 거. 사도행전 20장 29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라고'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 장로님들은 실제로 사도 바울의 이 경고를 명심하고, 그리고 에베소 교회 교인들이 믿음을 지켜내요. 많은 이단들이 미혹이 와서 그들의 믿음을 빼앗으려고 했지만 그들은 끝까지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고 이단을 용납하지 않게 됩니다. 훌륭하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에베소 교인 회를 칭찬하셨어요. 오늘 우리가 그 예수님의 칭찬을 읽었어요.

에베소 교회: 사랑 잃음과 부흥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내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주님이 다 아신다.' 이건 대단한 칭찬이죠. 그런데 아, 무서운 책망이 이어져요. 그것은 에베소 교회 교인들이 그렇게 믿음을 지키고 이단과 싸우려고 몸부림쳤기 때문인지, 아, 사랑을 잃어버린 겁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 4절 5절에 보면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내게 가서 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이 책망은 앞에 칭찬을 아무 소용없이 만드는 진짜 무서운 책망이예요. 사랑을 잃어버렸다. 첫사랑을 잃어버렸다. 용서와 사랑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는 거예요. 여러분, 어떤 이유에서든지 우리 안에 예수님 처음 영접할 때 그때 처음 사랑 만약에 잃어버리면 더 이상 성도가 아니고 더 이상 교회가 아닌 거예요. 우리 안에 원수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 이건 신앙의 생명과도 같은 겁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에게 나누는 어, 제 마음의 심령이 정말 눈물이 날 정도입니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너무 익숙하게 듣다가 보니까, 이 메시지의 심각함과 또 자기에게 반드시 적용되어야 될 것에 대한 의식이 아주 희미해져 버린 거예요.

워낙 많이 듣다 보니까 다 안다고 생각하니까, 한국 초대 교회사를 보면 황해도에 소래 교회가 나오는데, 선교사님이 복음을 전해 주어서 생긴 교회가 아니에요. 그 아주 자생적인 교회입니다. 만주에서 복음을 들은 기독교인들이 이 자기 고향땅 소래에 와서 거기서 자기들끼리 교회를 세운 거예요. 근데 이 소래 교회가 1907년에 평양에서 부흥이 일어나기 10년 전에 이미 부흥을 경험합니다.

우리 한국은 교회사를 보면 1907년이 부흥이 일어난 해라고 하지만 사실 그 전부터 곳곳에서 부흥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그 1903년에 원산 부흥도 대단히 유명하지요. 근데 1896년에 이 소래 교회에서 부흥이 일어나요. 캐나다의 말콤 펜윅 선교사라는 분이 이 소래 교회에 갔다가 거기에 한 300명가량의 기독교인이 있는 것을 보고 대단한 거죠. 그때 당시에 집회를 하게 됩니다. 선교사님이 오셨으니까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읍시다. 그래서 교인들이 모여서 집회를 하는데, 열심히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하는데 선교사님이 뭔가가 아쉬운 거예요. 그래서 첫날 집회가 끝나고 난 다음에 교회 지도자 되는 분을 불러다가 그렇게 말을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는데 무언가가 빠진 거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이는 중에 전혀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그런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딱 한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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