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3_IyTO9aPNk
이찬수 목사는 ' 베푸는 자'에 대한 설교 하며, 성경 구절을 통해 주는 즐거움과 복을 강조합니다. 또한, 목사는 약한 이들을 도우며 겸손한 삶과 섬김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설교를 통해 본인의 삶과 신앙생활을 되돌아보고, 참으로 주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이를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를 이야기합니다.
성경구절
33 내가 아무의 은이나 금이나 의복을 탐하지 아니하였고
34 여러분이 아는 바와 같이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이 쓰는 것을 충당하여
35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신약 성서 구절을 통해 이해하는 신앙생활의 본질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은, 예수님께서 아니이 세상에서는 전혀 통할 것 같지 않은 또. 상식적이지도 않고 잘 이해가 안 되는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거거든요. 사도행전 20장 35절 있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아니, 우리 모두는 본능을 갖고 있잖아요. 아무리 노력을 해도 줄 때보다는 받을 때가 기분이 좋은 거 아닙니까? 아니, 기대도 안 한 어떤 선물을 받을 때 마음에 기쁨을 사실 감출 수가 없는데. 예수님은 뒤집어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여러분이 신앙생활의 묘미라는 것은, 이 처음에 딱 읽을 때 도대체 이해가 안 되고 이게 무슨 말인가 그랬는데, 이제 신앙이 깊어가면서 '어, 이게 진짜네. 정말 이런 이런 말씀이 이게 진리네' 이 깨달아가는 기쁨이 있다는 거죠.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이 머리로 이렇게 이제 설교 같은 걸 통해서 머리로 깨달아가는 그 기쁨도 크지만요. 이제 삶 속에서 자기 삶 속에서 직접 실천해 보면서 터득해 가는 기쁨. '내가 해보니까 그니까 어, 이게 예수님 말씀이 진짜 그러네. 아,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정말 기쁘고 복이 있네'이 깨달아가는 것은 삶에서 이제 실천하면서 터득해 가는 것이거든요.
와튠 스쿨, 사람 분류 및 관계의 중요성 분석
오늘 본문도 같은 내용입니다. 미국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 그 '와튼스쿨, 뭐 굉장히 명문 학교로 알려져 있거든요. 이 '와튼 스쿨의 조직심리학 교수 애덤 그랜드 교수가 기브 앤 테이크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의 주제를 한 마디로 말하라면 '그 주는 사람이 성공한다' 이거예요. 그게 아까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금 여기다가 들어내는 거 같거든요. 그책은 이게 기독교 서적이 아니고요. 세계적으로 그분이야 최고라고 인정을 받는 전문가 교수님 책이에요. 거기 보면은 이 교수님이 사람을 세 부류로 분류를 합니다.
그 첫 번째 종류가 '기버', 그리고 두 번째 종류가 '테이커', 세 번째 종류가 '매쳐' 이렇게 분류를 하더라고요. 이 '기버'이 기어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받는 걸 받는 것보다 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 또 베푸는 것을 즐기는 사람, 그리고 그런 것 좀 베풀고 바로 대가를 바라고 이런 거 하지 않는 사람. 이걸 이제 '기버'라고 분류를 했고요.
그다음 두 번째 사람이 '테이커'인데 테이커는 한 마디로 말하면 줄 줄은 모르고 받아 가려고만 하는 사람.. 그리고 이 '테이커'의 특징은 자기가 준 것보다 상대방이 내게 더 많은 걸 주기를 바라는 사람. 이걸 이제 '테이커'로 그렇게 분류했고, 마지막 세 번째가 '매처'. '매처' 뭐냐면은 어 내가 남에게 베푼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돌려. 그 이상은 아니에요. 그니까 이 '매처'니까 남이 내게 베풀어 주는 만큼만 나도 베풀 것이야. 그래서 이 매처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입에 달고 다니는 구호가 이겁니다.
'아니 왜 나만 손해 봐야 돼?' 제가 보니까요 이 세 번째 부류가 오늘 현대인들에게 제일 많은 종류 같아요. 막 그렇게 정말 약아빠져 가지고 자기는 인색하고 받기만 하는 사람도 생각보다 많지 않고요. 그러나 이제 '왜 나만 손해 봐야 돼' 저 사람 나한테 이만큼 줬는데 나도 이만큼 줄 거야 사실 여러분 가장 인생의 그 동반자로 가장 가까운 부부 관계의 싸움에 거의 90% 이거예요. '내가 당신한테 어떻게 줬는데 왜 나한테는 이래?' 그리고 우리나라가 고부간의 갈등이 뭐 굉장히 또 다른 나라보다도 더 극심하잖아요. 고부간의 갈등의 결정적인 게 이겁니다. '아니 내가 저한테 어떻게 해줬는데.' 나한테 이래, 이거 아닙니까? 니, 내가 시어머니한테 어떻게 해드렸는데 나한테 왜 이러셔? 이게 전부 다 매쳐라서 그래요.
Give and Take' 책을 통해 성공하는 사람들의 특징 및 사도 바울 교훈
이 저자가 연구를 해보니까 이 새 부류 사람 중에서 이제 평균적으로 성공 확률이 높은 거예요. 그러니까 보편적으로 성공하는 사람들, 어떤 부류인가 보니까 우리가 추축하는 대로요. 테이커가 맞아요. 그러니까 줄 줄은 모르고 받아가려는 사람들이 이제 이 보편적으로 뭐, 평범하게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는 거예요. 그러나 이 교수님이 주장하는 건 뭐냐면 그렇게 뭐, 그저 뭐, 그저 그런 데서 조금 앞선 성공하는 건 이 테이커가 앞서 보이는지는 몰라도 이분이 연구해 보니까, 그런 평균 말고 정말 성공하는 사람들, 정말 성공하는 사람들을 연구하고 조사해 보니까 놀랍게도 이런 성공을 하는 사람 대부분이 베푸는 걸 즐기고 받는 걸보다 주는 걸 더 좋아하고 이런 사람들이 주로 크게 성공을 하더라는 거죠.
그러면서 강조하는 건 뭐냐면은, 단기적으로는 그저 줄줄 모르고 상대방에서 받아가려는 이 테이커들이 잘 나가보이는 것 같지만 연구에 보니까 그게 오래가지 못하더라는 거죠. 그러면서 그 책에서 이 지금 이 세상에서 통하는 그 사자성어가 이런 거 아닙니까? '약육강식'. 강한 자가 약한 자를 희생시켜서 번하는 거, 혹은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이가 되는 거. 이게 지금 이 세상에 모든 사람들이 맞다 그런 세상 맞다 그러는 거 아닙니까?
근데 이 저자가 주장하는 건 '약육 강식'이 승자 독식이건 틀린 말이라는 거예요. 그 이걸 굉장히 두꺼운 책이에요. 전문적으로 이걸 연구하고 자료를 모으고 통계를 보고 그 모든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이분이 내린 결론이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주는 사람이 성공한다. 그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아, 이게 의미가 있는 게요. 그 저자가 쓴 책 내용이 저처럼 설교하면서 교훈적으로 하는 차원이라 거나 혹은 이론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이게 전문가로서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계속 증명해 나가고 있다는 게 참으로 저한테는 와닿고, 그래서 저는 이 'Give and Take'라는 책을 읽으면서 오늘 본문에서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지금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강하게 권면하는 게 바로 그거 아닙니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하신 예수님 말씀을 기억하며 살아야 된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앞부분이에요. 자 앞에다가 악센트를 두고 다시 읽어 드리겠습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 있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을 도우되, ' 지금 울이 강조하고 있는 건 딴 게 아니에요. 아까 그 교수님은 자기가 과학적인 데이터와 근거를 가지고 주장했다면, 사도 바울은 '내가 살아보니 이렇더라'는 거예요. '내가 직접 그렇게 살아보니까 예수님의 그 말씀이 맞더라, ' 여러분, 자녀 교육에 힘이 있을 때가 언제입니까? 아이들한테 '아 나도 그 니 나이 때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빠가 경험해 보니까 아니더라' 이러면 애들 대부분이 동의를 해요. '엄마가 살아보니까 어, 네 생각보다는 내가 살아보니까 이렇더라' 이러기에 이게 설득이 되거든요. 맨날 옆집 아줌마 그러는데 이렇더라 그니까 말이 안 통하는 거거든요. '살아보니까 사도 바울이 지금 그 얘기를 하거든요.
성경의 원리: 희생과 자비의 믿음을 통한 본질적 행복.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범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해보니까 아, 진짜, 주는 자가 받는 저보다 복 되더라' 이런 논리를 지금. 있거든요, 자 그래서 우리가 세계적인 교수 과학자는 실험을 통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증명했고, 또 사도 바울은 자기 삶을 통해서 앞서 살아본 그게 선생 아닙니까. 먼저 선 날생 그 먼저 살아본 그 선생님이신 사도 바울이어 내가 살아보니까 예수님이 말씀이 맞더라. 아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또 가 가지고 또 연구하고 뭐 살아보고, 안 그러셔도 되잖아요.
이런 입증을 다 했으니까 그냥 수용하면 돼요. 그럼 중요한 거는 뭐냐. 아 그건 그러면 목사님 그러면 아 전문가가 그렇게 실험하고 또 삶으로 증명해 냈다면 그건 내가 믿겠습니다. 그런데 궁금해요, 무슨 근거가 또 어떤 원리가 이런 걸 만 그렇게 으실 수가 있잖아요. 그러면 제가 답을 드릴 수 있습니다. 이 근거가 혹은 원리가 뭐냐 하면은요, 우리가 이렇게 스스로 낮아지고 우리가 이렇게 그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걸 삶에서 실천하려고 애쓰면 거기에 하나님이 개입하세요. 그 일에 하나님이 임하세요, 그게 아까 제가 읽어 드렸던 야고보서 4장 10절의 내용인 익센트를 뒤에다 두고 한번 다시 보세요.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누가 높여 주세요.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우리가 주는게 이게 본능적으로 우리는 되게 좀 힘들잖아요 받는 걸 좋아하지 손해 보면서 하는 왜 나만 손해 봐야 돼 이런 본능을 억누르고 이렇게 자꾸 베풀고 주는 기버의 삶을 우리가 노력하면 그 노력에 하나님이 개입하세요 이런 걸 좀 맛보고 살아가는 그게 신앙의 묘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목사님 딱 설명해 놓은 구절을 좀 가르쳐 주세요. 그러면 몇 개 나오겠지만 저는 제일 먼저 그 질문에 드릴 그 성경 구절이 빌리보서 2장입니다 여기는요 십자가에.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리를 이것만큼 잘 설명한 게 없습니다. 보십시오, 빌립보서 2장 5 절부터 보십시오.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어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엄청나게 높은 곳에 계셔야 되는 보좌에 앉아 계셔야 될 주님이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게 이게 이게 낮아짐, 낮아짐, 낮아짐 아닙니까? 주님이 본을 보이셨어요. 그랬더니 원리가 어떠냐 성부 하나님께서 9절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리게 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