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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말씀

2024-06-09 | 절망은 소중한 꿈의 재료 | 이찬수 목사 | 분당우리교회 주일설교

by 빛과 소금이 2024. 6. 12.

https://www.youtube.com/watch?v=5nlT8xnMUG4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에서는 절망을 극복하는 의지와 희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며, 미래에 대한 믿음이 삶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동력이 됳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또한, 교회에서 상처를 받는 것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상처에서 배우고 성장하여 하나님 나라를 더욱 사모하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성경구절

6절: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7절: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절: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절: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생존 비결: 의미 치료

#로고테라피 #그 죽음의 수용소에서 

 

2차대전 때 나왔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그 유대인들을 학살하기 위한 그런 수용소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곳에서 약 600만 명이 살해를 당했다. 이거는 뭐 상상하기 어려운 그런 끔찍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죽음의 수용소에 서라는 책'이 있는데요. 이 책은 그 의사인 빅토 프랭클 박사가 거기에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거기에 이제 감금이 되고 그 끔찍한 그 절망의 수용소에서 경험했던 그 실화를 수기 그렇게 쓴 책입니다. 제가 알기로 거의 뭐 기록을 세웠다 할 만큼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또 감동을 받고 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이 책을 보면은 이제 딱 끌려 가지고 수용소로 들어가는 그 순간부터 이제 뭐 말로 할 수 없는 공포가 휍쓸리는거죠. 그 나치에 손가락 하나로 이제 이게 오른쪽으로 이 손가락을 기울이면 그거는 이제 사는 거고요. 이 손가락을 왼쪽으로 기울이면 바로 이제 가스실로 들어가서 이 죽임을 당하는 이런 너무나 공포스러운 또 죽음의 두려움이 항상 엄습하는 장소가 나치가 만든 수용소인데요. 

그 책을 쓴 빅토 프랭클 박사는 그런 절망적인 수용소를  곳이나 옮겨다녀야 했대요. 그 끔찍한 상황 속에서도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그 고난을 다 이겨내고 그렇게 살아남은 아주 입지전적 인물인데요. 그 '죽음의 수용소'라는 그 책을 이번에 새로 다시 이제 읽으면서 보니까 그 띠지에 이런 그가 있었습니다. 어떤 절망에도 희망이, 또 어떤 존재에도 살아가는 의미가 있다. 이게 뭐 그 책 전체를 딱 한 마디로 요약하라 그러면 요약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또 소제목에 이런 것들도 있더라고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또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그니까. 이런 소제목이 이번에 제 눈에 다시 띄었는데요. 이제 거기에 뭐 이런 내용들이에요. 그 강제수용소에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 중에서, 그 1944년 성탄절부터 1945년 새해까지 그 딱 일주일 사이에  사망률이 급증했다는 겁니다. 이게 참 이해가 안 되는 게요. 지금 그때 상황은 이제 해방되기 직전인 거예요. 그 모든 사람들이 이제 우리 해방된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왜 그 한주 크리스마스와 송구영신 예배가 드리는 닦고 일주일 사이에 사망률이 급증했는 내용이 이러더라고요.

이제 이 수감자들이 다 안 거죠. 이제 우리 이제 이제 풀려난다. 해방이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이제 성탄절에는 이 갈 수 있다. 집에 가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다. 이 기대감이 꽉 찼는데, 성탄절이 지나도 희망의 메시지가 안 전해지는 거예요. 연락이 없는 겁니다. 여전히 갇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 그들이 막 엄청 기대했던 그 기대가 무너지고 희망이 사라지니까 그게 이런 끔찍한 비극을 만들어 내더라는 거거든요.

그래서 나온 그 소제목이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이 죽음을 부른다. 그런 소제목으로 이런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 빅트 프랭클 박사가 이제 자기가 수용소에서 직접 경험했던 그런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비결을 가지고, 그걸 로고 테라피라고 하는 그 치료기법을 창시한 겁니다. 이게 우리말로 하면은 의미 치료라고, 이 의미 치료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이제 절망에 빠지는 그 절망적인 상황에 휩싸일 때 스스로의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 주고, 스스로의 삶의 의미, 스스로의 삶의 목표를 찾아가도록 돕는 심리치료 기법. 이게 로고세러피, 우리말로 이게 의미 치료라는 거거든요.

도전과 감동: 삶의 의미와 성경 인용 

# 로마서 8절 18절 #로마서 5장 3절 #로마서 5장 4절 

제가 이런 내용의 그 책을 쭉 다시 읽으면서 제 마음이 뜨거워졌던 이유는요, 두 가지인데요. 제가 뭐, 제가 뭐 이런 심리를 전공한 사람이 입니까? 근데 제가 이제 우리 청년들이 찾아올 때 극도의 절망 속에 막 자살 충동을 느끼고 할 때, 제가 썼던 방식이 저도 모르게 이게 의미 치료였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를 제가 설명하고, 제가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것이 의미가 된다는 이런 이야기를 계속 상담하면서 해줬거든요. 이게 뭐 로고 테라피지 뭔지 하나도 모르고 했거든요. 왜 출처가 빅토 프랭클 박사가 아니라, 저는 성경이니깐요. 제가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이 뜨거워졌던. 더 근원적인 그 감동은 우리 하나님이 저를 치료해 주셨던데 사용했던 게 이 빅토 프랭크 박사가 창시했다고 하는 의미치료였고요.

여러분이 아시지만, 사도 바울은 극심한 고난의 터널을 뚫고 나온 분 아닙니까? 그가 어떻게 그런 고난을 끝까지 견딜 수 있었는가, 본인이 그 비결을 로마서 8장 18절에서 이렇게 풀어 설명합니다.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이게 지금 빅터 프랭클 박사가 말하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이거 아닙니까? 이미 2천 년 전에 지금 빅터 프랭클 박사가 뭐, 2차 대전 때 뭐 그 수용소에 들어가고 뭐 깨닫기 훨씬 이전에 벌써 이 기법이 사도 바울이 겪고 성경이 기록해 놓은 기법이라고 로마서 5장 3절 4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그 박사님이 끔찍한 죽음의 수용소 네 군대를 전전긍긍하면서도 이걸 이룬 거 아닙니까. 소망을 이루는 차원에서의 환란과 연단, 이게 성경에 나와 있더라는 거죠, 제가 어느 그래 보니까요, 이 빅터프랭클 박사가 죽음의 수용소에서 풀려나와 자유의 몸이 됐을 때 했던 고백이 있대요. 이런 고백을 했답니다. 이 세상에서 이제 하나님 이외에 아무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경로운 느낌을 가졌다. 이게 연단이 소망을 이루어내는 그 원리가 이분에게 장착이 된 거거든요.

 이사야서의 희망 메시지

# 하나님은 우리의 절망을 꿈과 희망의 재료로 승화시켜 주신다

이사야에게 장차 오실 메시아와 그분이 다스리시는 나라에 대한 꿈을 환상으로 보여 주세요.  이사야 11장 1절입니다. 이세의 줄기에 산 싹이 나며 그 뿌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리고는 그 메시아가 다스릴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오늘 본문 6절부터 8절까지 이렇게 나옵니다.

그때에, 그때가 굉장히 중요한 표현입니다. 장차오실 메시아가 다스리실 그때에  이리가 어린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 짐승이 함께 있어 나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그래도 해를 당하지 않는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에 대하여 이게 아까 빅터 프랭클 박사의 그 표현으로 말하면,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절망으로 너의 인생이 끝나지 않고, 민족이 이렇게 끝나지 않는다. 그 절망적인 시대 속에 낙심하고 있던 이사야에게 우리 하나님은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의 꿈을 지금 이사야에게 심어 주고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오늘 설교 제목을 '절망은 소중한 꿈의 제목을 이렇게 짧게 했는데, 왜냐하면 사실은요, 오늘 설교 제목은 '하나님은 우리의 절망을 꿈과 희망의 재료로 승화시켜 주신다' 이렇게 제목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지금 좀 마음이 힘드세요. 뭐 좀 잘 믿어보려고 하면은, 맨날 이렇게 상처를 받으세요.

사람을 믿었는데, 사람을 의지했는데, 또 배신 당하셨어요. 교회까지 와서 또 상처를 받잖아요. 다락방에 갔다가 또 상처를 순장님 받고 원도 받고 하잖아요. 그렇게 해서 의기소침해지고 낙심이 되면요, 그때 불러야 되는 찬양이 하나 있습니다.

우울할 때 부르는 찬양: 사막에 샘이 넘치리라 

 

제가 거쳐가고 아마 단일 곡으로는 제일 많이 불렀던 곡 중에 하나 거 같아요. 여러분 마음이 우울하면, 이 찬양을 따라 부르세요.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리라, 사막의 꽃이 피어 향내 내리라.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꽃동산 되리 아.' 왜 이렇게 아무도 안 따라 부르는데요? 그 나 혼자 우울한가 다행이에요 하면요. 이 찬양에서 가장 중요한 건,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은 이예요. 지금 뭐, 뭐, 뭐 정부, 그 뭐, 뭐 바뀌고 좀 있다 또 바뀌고, 또 바뀌고 맨날 그 다람쥐 쳇바퀴 돈을 듯이. 지금 맨날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 어느 정권이 최근 들어서 뭐 역대에 모든 국민을 정말 그 눈물을 닦아주는 이런 시 하는 일을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그 뭐, 뭐 안 그런 적이 있었냐고요? 때, 우리에게는 오히려 이게 참이 낙심이 되고 힘들고 우울한. 이것이 오히려 희망의 재료가 되는 거죠.

이 노래를 부르면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은 그 2절에도 보니까 사막의 숲이 우거지리라.  사막의 예쁜 새들 노래하리라. 언제 주님이 다스리는 그 나라가 되면은 사막이 낙은 되리라. 이런 찬양을 통해서 오히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절망을 오히려 꿈과 희망의 재료로 승화시켜 주신다. 근데 여기서 한 가지요. 이렇게 지금 하나님께서 우울하고 낙심하고 있는 이사야에게 놀라운 그 꿈과 희망의 재료로 그를 이제 찾아가 주시는데요. 근데 그 과정에서 기억할게 하나 있습니다.

자, 액센트를 넣어 가지고 1절을 다시 한번 보세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여러분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놓치시면 안 됩니다. 여기 보면 지금 희망, 희망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하여 설명하시기 막 슈퍼맨처럼 붉은 망토를 치고 막 한번 압도적으로 휘어 놓으시는 게 아니라 작은 싹으로 온대요. 그 보이지도 않는 뿌리에서 작은 가지로 오신다는 겁니다.

 

출애굽 1장: 이스라엘 백성의 절망과 하나님의 대안

#갈대 상자 #마태복음 13장 #겨자씨 

출애굽 1장에 보면은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노예로 압제로 신음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죽하면 지금요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들을 낳으면 죽임을 당하던 시대예요. 이 눈물이 거치지 않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 숨쉬기가 어려운 그런 상황인데요. 그런 상황에서 그때 하나님이 주신 대안이 뭐예요. 붉은 망토로, 한 번에 그 문제를 다 해결하는 슈퍼맨이었습니까. 놀랍게도 지금 백성들이 숨쉬기가 어려운 고난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신 대안이 갈대 상자예요. 그 아기, 그 상자에 놓고 나일강에 뛰어 갖고 어느. 천년에 예수가 가지고 그 민족을 구하겠네요.

또 마태복음 1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친히 이제 천국에 대한 주님이 다스리실 나라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는데, 마태복음 13장 31절, 32절입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갔다 심은 겨자씨 하날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다.' 이게 뭐예요 이게? 아, 이게 우리 같으면 막 그냥 큰 새들이 깃드는 어마어마한 이런 나무를 보여주면서, 이제 너희들이 하나님 나라를 꿈꿔도 좋겠다 이래도 시원찮은데 뭐, 무슨 겨자씨로 임한다. 모든 씨보다 또 제일 작은데요. 그런데 왜 하나님의 나라는 이렇게밖에 설명을 못 하시는가? 그게 왜 그러냐 하니까요.

자, 32절을 끝까지 제가 읽어드릴게요. '엑센트를 바꿔가지고,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며, 그다음 보세요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여러분 잘 들어보세요.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어떤 슈퍼맨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신앙생활은 영적인 상상력을 회복하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사실을 보면서 뭘 상상합니다. 이제 장차 수많은 지친 새들이 깃드는 그 나무를 보는 그 영적인 안목과 상상력을 자취를 보면서 찾아나가는 게 이게 신앙이에요. 그래서 여러분 막 이제 뻥치고 이런 교회는 약간 그게 좀 사이비에 대부분이 그래요. 목사도 슈퍼맨이고 성도들도 이교회도 어마어마하다. 거의 다 가짜일 확률이 많아요.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임하지 않아요. 목사부터가 아니라 주인 되실 주님이 겨자씨로 임하는데, 저 같은 게 뭐 뭐 뭔지 그것도 과분한 거. 아니라고 하십니까?

그러나 우리가 우리로 되면, 여러분 보세요. 22년 전에 나무를 심었더니 거대한 나무가 됐습니다. 분당 우리 교회에 수많은 분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설교하는 건 복음이 아니에요. 여전히 겨자씨예요. 그런데 그 겨자씨를 보면서 수많은 새들이 깃드는 하나님 나라를 영적인 상상력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는 것이에요. 이게 제대로 건강한 교회의 모습이라고 저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히브리서 11장 1절을 보십시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세 번역으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제가 시카고에서 죽을 마음에 갈등을 느끼고 우울하고, 눈 뜨고 싶지 않고 자살 충동을 느끼고 그러던 때에 하나님이 저를 성령이 강력한 은혜로 만나 주셔서 가슴이 터질 것 같고, 그동안에는 우울하고 좌절에서 눈물을 흘렸는데, 너무너무 가슴 벅참으로 눈물 콧물을 다 달리면 뭐. 목사들이면 무슨 소용이야 이런 은혜를 받아야지. 나 이제 오늘 은혜를 받았다고 막 가슴 터지는 것까지 기뻤는데.. 그렇게 하고 자고 일어났더니 달라진 게 하나도 없어요. 최저 임금에서 단 10센트 올려 주지를 라는 그런 삶이고, 영어는 뭐.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그냥 못해요. 그냥 성경에 막 그 배우지도 않은 방언을 가지고 막 크 멋있게 기도하고. 아, 저는 꿈에도 정말 한번 막 영어로 한번 설교해 봤으면 너무 좋겠는데. 

믿음과 영적 상상력의 중요성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근데 여러분, 제가 은혜 받고 달라진 게 있어요. 아무 현실이 바뀐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받고 나서, 제가 겨자씨를 보고 거대한 새들이 깃드는 나무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친구들에게 계속 제가 속으로 선포한 거 아닙니까? 나흘 지금 나 좀 초라해 보이지, 비참해 보이지. 나 이렇게 안 무너진다. 우리 아버지가 금식 기도하다가 돌아가셨는데, 내가 이대로 무너지겠어? 말로는 못 하고 속으로만 자살을 보면서 대한 나무를 꿈꾸게 되니까 딱 그렇게 지금 대하고 있더라고요.

딱 10년 뒤에 청소년 사역할 때 말로 다할 수 없는 그런 영광을 보여 주시고, 지금까지예요. 그래서 여러분, 그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세 번역으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여러분, 이걸 장착하는 게 성숙한 신앙인이고, 이걸 잘 구현해 낸 인물이 엘리야 선지자 아닙니까? 열왕기상 18장에 보면은요, 지금 엘리야가 자기 민족이 겪는 극심한 가뭄의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열왕기상 18장 42절 말씀을 보면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 아무리 기도해도 안 바뀌어요, 뭐 지치지도 않아요. 일곱 번까지 그렇게 해라, 하나도 안 바뀌어요. 그런데 44절에 보니까,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그랬더니 엘리야의 반응을 보세요..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지금 엘리야가 갖고 있는 영적인 상상력이라는 건 손많은 구름 하나를 보고 폭우가 쏟아지는 상상력을 하는 거예요. 겨자씨 하나를 보고 수많은 지친 새들이 깃 뜨는 것을 상상하는 이 영적인 상상력을 엘리야가 장착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래서 권력은 아방이 갖고 있지만 그를 좌지우지하는 믿음으로 기도하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 영적인 상상이 맨날 그냥 현찰로 달라고, 현찰로 달라고 그냥 짠 하면은 새들이 깃드는 나무를 달라고 이렇게만 구하니까.

오늘 한국 교회가 이 시대와 민족 앞에 맥을 못 쓰잖아요. 누가 지금 한국 교회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까? 전부 그냥,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분 예배드릴 때마다 개자식을 보여 주시고 예배드릴 때마다 낙심에 있는 여러분에게 손 많은 작은 구름을 보여 주시는데, 여러분은 막 새들이 깃드는 나무만 구하러 와 가지고 오늘도 왔다가 아이씨, 오늘도 못 보고 가네 그러면서 아, 이러니까 내가 지각을 안 할 수가 있어 막 그러면서 지금 계속 또, 또, 또 다음 주일에는 보여 주시려나 그고 또 오시는 거 아닙니까?

시선을 바꿔야 돼요. 영적인 안목을 구하세요 여러분, 아들 보고 오늘 잔소리하면 내일 얘가 달라집니까? 그 딸이 뭐, 오늘 뭐, 너 정신 차리라 그런다고 뭐, 내일 정신을 차리던가요 그 철없는 그 여러분의 아들 딸을 보면서, 그 자식 같은 보잘 그 아이를 보면서 그 아이 속에 있는 거대한 새들이 깃드는 나무를 보는 눈이 눈을 가진 부모를 못 만난 그 딸이 불쌍할 뿐인 거 아닙니까? 오늘 삼 예배를 드리신 우리 새 자녀가 할렐루야, 그러고 제 설교를 들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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