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youtube.com/watch?v=Il7_nJ2kS0E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에서는 성령에 의한 충만함이 주는 영향과 중요성에 대해 다룹니다. 예배를 통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부터 시작해, 인간 간의 겸손한 관계 회복, 그리고 직장에서의 삶까지 성령의 영향을 통해 나타나는 변화와 열매를 설명합니다. 이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인해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가르침을 전합니다. 분당 우리 교회의 성도분들에게 교회와 예배를 통한 변화의 중요성을 상기시키며, 성령 충만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성경구절
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생명을 건 문장과 어려움 속 지혜를 찾아
이제 나이가 들어가고 또 담임 목사가 되니까 막 면전에다 되고 야단치고 이런 분들이 당연히 이제 뭐 없어지죠. 그러나 제 삶의 중심을 잡도록 그래서 제가 그 가수의 그 참 어리석은 모습을 보면서, 제가 이 구절이 자꾸 떠오르는 거예요.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라. 그래서 제가 목회하다가 좀 어려운 일이 생기고 답답하고 난감하여, 저는 이제 sos 치는 거죠. 성령님, 저는 우둔합니다. 저에게 지혜를 주시기 원합니다.
그리고 이제 이제 저한테 무슨 좀 이제 이 이메일이 좀 난해한 메일이 오잖아요, 그러면 바로 답 안 써요. 거의 바로 답 쓰면 실수해요. 제가 우둔하게 때문에 그거를 적어도 한나절 이상 많을 때는 한 이틀 3일. 아, 물론 이제 메일이 많이 오니까 바로 답을 못 쓰는 경우도 있지만, 지혜를 구하는 거죠. 그리고 이제 저한테 어떤 문제를 제기하는 이런 글을 받으면요. 어떨 때는 화가 나요? 아니 뭐 이게, 이게 뭐 이런 오해를 하나. 그래서 막 쓰고 싶어요. 그때 절대 쓰면 안 되는 거죠. 그 100%. 그게 실수가 되거든요. 그래서 이제 시간을 가지고 성령님께 지혜를 구하고 그런가 하면은, 여러분, 아침에 출근하실 때 우리나라만 그 기도하기 좋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어마어마하게 막히는데 빵빵빵 이렇게 하지 말고 기도하시는 거죠. 성령님께, 그 차를 몰고 가시면 막 큰 소리로. 그렇게, 저는 부르짖거든요. 내가 하나님, 오늘 지금 그 막 교회에 굉장히 중요한 이런 일들 때문에 전문가들을 만나러 많이 다녔는데요. 그때마다 하나님께 구하는 거죠. 성령이, 저는 입술이 우둔합니다. 제 말의 설득이 잘 안 이루어질 것 같은데, 저에게 지혜를 주시기 원합니다.
지하철에서 성령의 도움을 청하는 방법
그리고 이 지하철 타고 갈 때는 막 소리 지르면 뭐 큰일 나잖아요. 그때는 조용히, 조용히 은혜를 구합니다. 지혜의 성령님, 보혜사 되시는 성령님이 저의 우둔함을 감추어 주시기 원합니다. 하루를 그렇게 시작 한번 해 보세요. 회사 가셔서, 자리에 앉으면서 컴퓨터부터 켜지 말고, 성령님께 보해서, 성령님께, 내가 컴퓨터를 켜기 전에 먼저 성령님을, 인식하고 도움을 구합니다. 오늘 하루, 저를 잘 인도해 주시는 보혜사가 계시니 참 감사합니다. 그렇게, 한번 시작을 해 보시라고요.
그래서 저는 야고보서 1장 5절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뭐, 누구라서 실수를 안 합니까? 여러분, 그 가수가 유난히 악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막 상황에 당황이 되고, 이제 막 눈에 막 막, 이제 막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이 닥칠 거 상상하니까 너무 이제 마음이 급하니까 그렇게 된 거 아니냐고요. 그럴 때 성령님을 구하는 거죠. 보혜사, 성령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정말 이 일이 잘 정리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다시는 제가 그런 어리석은 짓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성령님께 의뢰하지 않은 게 참 이분에게 제가 마음이 아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에베소서 5장 18절 자꾸 묵상하시면 좋겠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근데 여러분, 여기 나오는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이 번역은 잘된 번역이 아니에요. 이게 이 뉘앙스로 잘못 읽으면 뭐 성령 받아라. 그래서 이 성령님을 인격자 채로 인정해 드리지 않고, 그 무슨 수단, 도구로 생각하기가 쉬워요. 그래서 예전에 70년대 80년대 부흥회 같은데가 보면은, 제가 이제 중고등학생 때고 어릴 때도 굉장히 거부감이 가는 기억이 있거든요. 그 이상하게, 그 당시로 부흥사들은 거의 다 '홀리 보이스'라고 다 목이 다 쉬어 계세요. 그리고는 이제 막 열받으면 막막, 이렇게 선포합니다
성령에 의해 충만함을 받아
'성령 받으라.' 아까 일부 때는 굉장히 잘했는데, 그 여러분, 그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성령님이 물건입니까? 제가 옥한흠 목사님이 제가 존경하는 어른인데, 제가 막, 어, 옥함흠 받아라 그러면 이거는 두들겨 맞아야 되는 불경 아닙니까? 이찬수 받아라. '아, 내가 물건입니까? 성령 받아라.' 그러면 또 막 아멘. 그러고, 그 정말, 그 무지한 거예요. 그리고 그건 아주 악한 거예요. 성령님을 그렇게 취급하면 안 된다는 거죠. 우리 성령님은 인격 자세요, 인격을 가지고 계시고 인격자 중에서도, 뭐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성령님은 항상 존중해 드리고, 항상 그분에 대하여 존중해 드리는, 그 이상의, 그런 마음을 담아 들여서 함부로 내뱉는 것도 조심해야 돼요.
그니까, 항상 우리가, 그렇게 막 성령님을 함부로 대하고, 이것도 굉장히 나쁘고. 그런가 하면은 또 아예 성령님을 그림자 취급하는 분이 너무 많으시잖아요. 인간도 그렇게 그 따돌리고 하는 거, 그거, 그 나쁜 거라 그러잖아요. 아예 성령님의 존재에 대하여 지금 그 무시하고 사시는 분이 얼마나 많으시고요. 그 자꾸 그분을 우리가 인격을 존중해 드리고, 인정해 드리는 거죠.
그런가하면은 이제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라. 이게 번역이 썩 잘된 게 아니라면 그럼 어떻게 번역하는 게 좋은이 18절에 나오는 충만함을 받아라. 이걸 원으로 보면은요, 충만해 져라. 또 충만하게 되어라. 이 권면이 충만하게 되기 원한다. 그럼 뭘로 충만합니다. 그게 앞에 나오는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이러는데요, 여기 나오는 오직 성령으로, 이거는요 성령에 의하여, 또 성령 안에서, 이렇게 번역할 수 있는 표현이에요. 그러니까, 성령 받아라 이게 아니고요, 성령님의 의해서 충만해 지라는 거예요. 성령님이 도구가 아니에요, 그 충만함을 주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된다는 그런 뜻으로 이 본문을 우리가 해석해야 되는데요. 그러면,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된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이게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된다는 것은 조금 그 추상적인,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된다는 이 말씀은요, 성령의 영향력 아래 놓인다. 또 성령의 지배를 받는다. 이게 성령에 의해 충만하게 된다는 거. 그래서 아까 술 취하지 마라 이거를 이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을 지금 대비하는 이유가 그거예요. 왜 술 먹고 운전하면 안 됩니까? 그분이 평소에 점잖아 가지고요, 빨간불에 쑥쑥 하시는 분이 아니에요. 그런데 술이 자기를 지배하 마비가 되는 거죠. 그 막 빨간 부리 막 가고요 막 차선은 막 삐뚤빼뚤 가고. 그리고 저기 사람이 오는데 평소에 이분 인격으로 말하면 절대로 그 위험한 운전 안 하는데 막 달리는 거예요. 그래서 술 취하면 운전하면 안 되는 게 술이 자기를 다스리고 있기 때문에 술이 자기를 통지하기 때문에 기능이 마비가 돼 버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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